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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팀(031-729-5020∼8)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동 탄동(炭洞)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남씨편(南氏便)과 독정리(讀亭里)를 병합하여 탄리(炭里)라 칭하고 중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고, 다시 1973년 7월 성남시로 승격되면서 탄동의 일부를 갈라서 신흥동(新興洞) 으로 칭하였다. 1975년 10월 신흥1·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0년 9월 1일 신흥2동을 갈라서 신흥2·3동으로 개편되었다.신흥동의 명칭은 1973년 시승격 당시 동이 신설되면서 새롭게 부흥하자는 뜻으로 시정자문회의에서 붙인 이름이다.

신흥1동

  • 신흥1동은 옛날 산야지로 취락이 없었음.

신흥2동

  • 옹정촌(甕亭村 · 독정리)
  • 옹정촌은 숯골(탄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금의 성남초등학교에서 희망대공원 중간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가는 길이 숲이 우거져 마치 옹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하여 옹촌(甕村)이라 불리웠고, 신흥주공아파트 자리에 조선조 世宗때 좌찬성을 지낸 후 낙향 한 정대년(鄭大年 :1503∼1578 東來鄭氏)이 책을 읽으며 소일하였다 는 정자(亭子)가 있었으므로 옹촌의 옹(甕)자와 정자의 정(亭)자를 취하여 옹정촌으로 불렀고, 그 일대 산을 옹정산으로 칭하게 되었 다. 그 후 정자에는 선비들이 모여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여 [옹정]을 독정리(讀亭里)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여 진다.

신흥3동

  • 샛고개(間峴)
  • 샛고개는 평양조씨의 세거지(世居地)로 최초의 정착인은 부호군 을 역임한 조계홍(趙繼興 1534∼1590)이다. 조계흥은 조선조 개국 공신인 조준(趙浚)의 아우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조견 (1351~1425)의 5대손이다. 계홍은 충좌위부호군을 역임하였으 나 이후 자손은 출사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