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대왕면 시흥동 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시흥리(始興理)라 하였음. 1971년 경기도 성남 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성남시에 편입되고 , 1975년 대왕출장소에 편입되어 시흥·금토·사송의 3개동을 합하여 시흥동이 설치되었으며 1989년 5월 區制의 실시에 따라 수정구에 편입되었다.
시흥동은 원래 용인에서 말죽거리(지금의 양재동)를 통하여 서울로 가던 길가에 있던 마을 주민들이 청계산 일대에 숨어살던 도적떼의 피해가 극심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처음에는 노변에서 이주시킨 마을이라 하여 `보낸말` 이 라 하던 것이 `모랜마`로 변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이제부터는 도적떼의 폐해가 없을 것이니 새로 흥할 수 있는 마을이라 하 시흥리라 하였다가 시흥동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시흥동에 편입된 사송동은 조선시대 광주군 대왕면 사촌리(沙 村里)·송현동(松峴洞) 일부지역이었으며 사촌리의 沙자와 송현 동의 松자를 취합한 이름이다. 그리고 사촌은 탄천의 범람으로 마을 주변에 모래사장이 많은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송현(松峴: 솔고개)은 고개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솔고 개 밑 동네라 솔고개라 하던 것을 松峴으로 漢子 표기화 한 것 이다. 일부는 분당구에 편입되었다.
또한 '금토동'은 '금현동'과 '둔토리'를 병합하여 금토리라 하였으므로 금현동의 '金'자를 취하고 둔토리에서 '土'를 취하여 지어진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