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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역사


광주군 대왕면 고등리·상적리·둔전리등의 지역을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로 편제시켰다가 1973년 7월 성남시에 편입되어 고등동 이 관할하였고, 1975년 3월 성남시 대왕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77년 6월 10일 3개 지역을 병합하여 행정동명을 고등동으로 사 용하게 되었음.

1988년 7월1일 대왕출장소가 폐지되었고 1989년 5월1일 성남시 區制의 실시에 따라 수정구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 대 왕
조선조 태종의 능을 대모산에 모신것에 유래하여 초기에는 대왕(大王)이라 표기하였으나 후에 대왕(大旺)으로 수정하였음.
* 고등동
1973.7.1. 시 승격당시 고산리(高山里)와 등자리(登子里)로 나누어졌던 것을 두 마을의 이름 첫 자를 따서 고등동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둔전동
고려때 지방에 주둔한 군대의 군량이다. 관가의 경비에 쓰도록 지급된 토지가 둔전(屯田)인데 이 마을에 둔전이 설치되어 둔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 상적동
윗골, 아랫골, 적푸리를 합한 동리로 적푸리는 옛날호걸들이 모여 피리를 불며 놀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윗골에서 상(上)자와 적푸리에서 적(笛)자를 합하여 상적이라 부르게 되었다 함.
* 옛골
옛날에 용인방면에서 한양으로 통하던대로의 아래 위에 각각 마을이 있었으므로 구분하여 윗골, 아랫골로 부르던 것이 옛골로 변하여 오늘까지 불리어지고 있음.
* 적푸리
애초에 적푸리는 적(笛)무리에서 변형되었으며 적무리는 옛날에 호걸들이 모여 피리를 불며 놀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한때는 저풀이 또는 적드리로 불려지기도 했음.
* 새술막
6.25사변 이후 다른지방사람들이 이주해와서 하천가에 만든 부락이 현재 고등동의 중심을 이루는 시장일대인데 술집이 새로 생겼다하여 새술막이라 부르게 되었음.
* 등자리
인능산 밑지역으로서 덕수이씨 후손의 등과하는 경사가 잇따라 붙여진이름이라는 설과 덕수이씨네 묘가 많은데 벼슬이 높아 석등(石燈)이 세워진 마을이란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