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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역사

위례동은 조선시대에 서부면 '창말'이라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때 광주군 세촌면의 세곡동을 병합한 후 창곡리가 되어 중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면서 창곡동이 되었음.

1973년 성남시가 출범하면서 복정동과 함께 복정동이 되었고, 1989년 5월 구제가 실시되면서 수정구 복정동, 수정구 창곡동이 되었음.

2015년 11월 2일 창곡동과 복정동의 일부(헌릉로의 북동쪽 지역)를 관할로 행정동인 위례동이 설치되었음.

창곡동(倉谷洞)의 지명 유래로는 첫째, 나라에서 봄에 곡식을 대여해주고 가을에 이 대여한 곡식을 거두며 보관했던 창고(倉庫)가 있었다는 설, 둘째, 조선조 말기 탄천 일대에서 생산된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는 설, 셋째,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이어서 '군용지(軍用地)', 창(槍)말' 등으로 불리던 지명이 한자화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모두 이 지역에 창고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