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 역사
신흥3동 지역은 옛날 `샛고개`라는 취락이 있었으며, 남한산성 입 구의 깊은 계곡 주변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굽는 숯골 마을이 형성된 후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은 광주군 세촌면 탄동 이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중부면 `탄리`라 칭하 게 되었다가 1970년대 경제성장과 수도 서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서울지역 주민이 집단 이주되어 취락이 형성되었음.
1973년 7월 성남출장소가 성남시로 승격되면서 행정구역은 신 흥동으로 편제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신흥동 내의 현재 시 민로를 경계로 신흥1·2동으로 분동 되면서 동쪽편 지역의 신 흥2동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지역경제발전과 인구의 증가로 인 하여 1980년 9월1일 신흥2동 내의 공원로를 경계로 신흥2·3동 으로 다시 분동 되면서 공원로의 서쪽이 현재의 신흥3동이 되었음.
1973년 7월 성남출장소가 성남시로 승격되면서 행정구역은 신 흥동으로 편제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신흥동 내의 현재 시 민로를 경계로 신흥1·2동으로 분동 되면서 동쪽편 지역의 신 흥2동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지역경제발전과 인구의 증가로 인 하여 1980년 9월1일 신흥2동 내의 공원로를 경계로 신흥2·3동 으로 다시 분동 되면서 공원로의 서쪽이 현재의 신흥3동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