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성은 온조때 하남위례성에 말갈족의 침입이 있으므로 청량산을 중심으로 고지대에자연적으로 형성된 요새지인 이곳으로 온조 14(BC5)년 천도하였으며 신라 영역이 된 후로문무왕 12년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산 또는 일장산이라 하였다.
조선조에는 광해군 13년에 처음 남한산성을 경도 보장지로 정하고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한 것은 이괄의 난을 치르고 후금의 위협이 증가하므로인조2년 수어사 이서에게 명하여 수축케 하였다.
축성에는 벽암(각성)대사도 도총섭에 임명되어 팔도승군을 동원하여 축성공역에 임하였으며 2년만인 인조 4년에 준공되었다. 그 후 숙종 때 외성을 축조하는 등 성의 시설물이나 성내의 영조물 조영은 조선말 순조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성곽의 주변부가 높고 험악한 데 비해 성의 중심부가 낮고 평평한 평지를 이루어 수비가 용이하고 성내의 주거가평안하여 산성으로는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은 본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으며, 둘레는 9.05Km이고 높이는 3m ~ 7.5m이고4장대 (서장대만 존재), 4문, 5옹성, 16암문, 2봉화대가 있고 성내에는 군포 125, 지당 45 정호 80, 수대 8개소가 있었다. 유사시에는임금이 기거할수 있도록 행궁을 비롯하여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종각 등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없다.
사찰은 축성 전부터 망월사, 옥정사가 있었으나 천주사, 한흥사, 장경사, 동림사를 지어 모두 9개 사찰이 있었으며, 현재는 장경사, 망월사,개원사, 국청사를 복원하여 4개의 사찰이 있다.
성내의 지정된 문화재로는 성곽이 국가사적 57호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지방 유형문화재로 수어장대, 청량당, 숭열전,현절사, 침괘정,연무관, 문화자료 지수당, 장경사 기념물로는 망월사지, 개원사지 등이 있다.
이 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며 비록 스스로 항복하였으나 외침에 의하여 정복당한적이 없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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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괘정
주민들간에는 백제 온조왕의 왕궁지라고 불리며 현재의 건물은 영조 27년에 유수이기진에게 중수하게 하고 침괘정이라 명명하였다.
조선조에는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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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곽
- 문화재명 : 남한산성곽
- 지정번호 : 국가 사적 57호
- 소재지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산일원
- 지정년월일 : 1963년 1월 21일
- 축성시기 (현재성) : 본성 : 인조 4년(1626), 외성 : 숙종
- 구성 : 본성, 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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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관
숙종 때 종전에 연무당이라 불리던 것을 수어사 김재호로 하여금 일대 개수하게하였으며 이 건물을 중심으로 무술을 닦고 무재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한양에 보내는등 군졸들의 무술을 닦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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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청량산(일장산) 정상에 위치해있으며 동서남북 4장대 중 서장대로서 유일하게남아있으며 인조 2년에 단층으로 축조한 것을 영조 27년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받들어 2층 누각을 증축하고 외부편 액을 수어장대, 내부편액을 무망루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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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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