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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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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명유래
  4. 복정동
담당부서
총무팀(031-729-5020∼8)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細村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마절 (釜谷)·기와골(瓦谷)·안골·응달말을 병합하여 복정리(福井里)라 칭하여 광주군 중부면에 편입되었다. 그후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성남시 복정동(福井洞)으로 개칭되고 1975년 3월 창곡동을 관할하였다. 그후 1989년 5월 수정구에 편입되었다. 복정동에 명칭은 복우물(福井)에서 유래한다. 구전에 의하면 큰 복우물이 있었던 곳은 현 정수장 뒤인데, 안골로 가는 길, 또는 길과 밭 사이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영장산(靈長山) 복정동쪽 상봉에 있는 칠성대의 감로천(甘露泉)이 복우물이라고도 한다.

  • 가마절 : 두곡(斗谷)·두둑말이라고 했는데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 하여 부르게 된 명칭이다.
  • 구석말 : 정수장과 가천대(舊 경원대) 사이의 마을로 구석진 곳이라 하여 칭하게 되었으며 청송심씨, 밀양박씨, 남양홍씨의 세거지(世居地)라고 한다.
  • 기와말 : 복정동사무소 일대를 말하는데, 이곳은 옛날에 남한산성에 사용한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한다. 이 마을은 진주강 씨, 원주원씨, 남양홍씨, 문화유씨 등의 세거지(世居地) 였다.
  • 심박골 : 웃말 동남방에 위치한 마을
  • 안골(內谷) : 마옥리(磨玉里)라고도 하는데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진주강씨, 문화유씨의 세거지이다.
  • 복우물 : 복정동 정수장에 뒤에 있었던 우물로서 물맛이 좋은 복스러운 우물이 있었던 때문이라 하지만 복우물은 찾아볼 수 없다. 구전에 의하면 정수장 뒤 밭에 큰 기와집이 있었는데 호란 때 금 베틀을 우물 속에 넣고 피난 갔다가 주인은 생사불명이 되고 나중에 머슴이 이 금베틀을 꺼내려하니 천둥·번개가 쳐서 꺼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 안골우물 : 안골마을 중앙에 있던 동네 우물로 폐정되었다.
  • 까치우물 : 까치골 김완억의 집 20m지점의 우물(약수터)
  • 향나무우물(아래우물) : 안골의 대동우물로 수원이 풍부하고 수질이 좋았으며 취락 형성시에 조성되었는데, 우물 주위에 200여 년 된 향나무 두 그루가 있다. 현존하고 있으나 식수로는 사용 불가함.
  • 윗 말 : 가천대 서편 판교 구리간고속도로 서편마을
  • 까치골 : 웃말 북쪽, 동서울대( 舊 대유전문대) 건너편(前)으로 1975년 김완억(金完億:1936년생)이 율현동에서 이주하여 민가 1세대가 있다.
  • 독쟁이 고개 : 가마절과 신흥2동 주공 아파트 쪽으로 왕래 하던 고개
  • 영장산 : 복정동 남동쪽의 해발193.5미터의 산
  • 복고개 : 국제학교 뒤쪽으로 기와골에서 헌릉로( 舊 약진로)로 왕래하던 고개
  • 독 골 : 가천대학교 캠퍼스를 말한다.
  • 서낭당 : 구석말에서 독골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었는데 가천대 캠퍼스가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 터 골 : 복정동 정수장 뒤 집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와편 과 사기그릇 조각이 출토된다.
  • 사거리 : 복정동 현 버스정류장 주변
  • 시새벌 : 모래가 많은 벌 (들)
  • 마룻들 : 복우물이 있는 넓은 들(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