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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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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정구안내
  2. 수정구소개
  3. 지명유래
  4. 위례동
담당부서
총무팀(031-729-5020∼8)

2015년 11월 2일 신설된 위례동은 그전까지 창곡동으로 불리었다. 창곡동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서부면 창말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세촌면(細村面)의 세곡동을 병합하여 창곡리라 하고 중부면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성남시에 편입되어 복정동의 관할이 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수정구에 편입되었다. 창곡(倉谷)의 명칭은 첫째, 나라에서 봄에 곡식을 대여해 주고 가을에 이 대여한 곡식을 거두어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다는 설. 둘째, 조선조 말기 탄천 일대에서 생산된 군량미(軍糧米) 창고(倉庫)가 있었다는 설. 셋째, 병자호란 당시 군사들이 진을 폈던 곳(軍用地)이며 병기를 저장했던 곳(병기고)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위에 세 가지 설에서 공통된 점은 창고라는 것이다. 창고터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명칭이 창말- 창골- 창동 등에서 유래한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 배산 : 창곡3동 앞산이 배같이 생겼다고 하여 칭한 이름이다.
  • 병풍산 : 1통 뒷산으로 매착이까지 뻗은 산줄기를 칭한다.
  • 안산 : 창말과 세죽골 사이의 산이다.
  • 서낭당고개 : 약진로에서 남한산성(성남로)과 산성동으로 갈라지는 지역으로 옛날에는 큰 서낭이 있었음
  • 천행이고개 : 매착리에서 매맞고 지나가는데 매맞지 않고 갔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넓은골 : 긴골과 좁은골 중간에 있는 골짜기로 약진로 아래 지하터널 위 조씨종산 일대이다.
  • 댕골 : 창말에서 외곡동 가는 길 위를 칭한다.
  • 세자골 : 백제시대에 세자궁이 있어서 세자골이라고 한다. 간이골 세자궁 터라는 곳 (밭)에는 와편이 출토되고 있다. 또는 세 집이 살아서 세집골이었는데 세자골로 변했다고도 한다. 이 일대는 전주이씨 사패지로 오씨- 전주이씨가 세거하고 있다.
  • 풀무골 : 창말에서 동쪽으로 광산김씨 묘막이 있는 골짜기이다.
  • 석양들 : 창말에서 외곡동으로 가는 길 아래들(논)을 서쪽이라 해서 칭한 지명이다.
  • 성남로 : 약진로에서 남한산성 가는 길인데 자유당 때 이대통령이 산성에 가느라 닦았기 때문에 이박사의 호를 따서 우남로라고도 했다.
  • 숲펑 : 창말 아펭 오리나무들을 방풍림으로 심었는데 이를 칭한다. 숲 위를 숲안이라고 한다.
  • 약진로 : 창곡동과 복정동 사이의 도로로, 옛날 단대동 방향에서 서울 왕래할 때 다니던 길이다.
  • 진터벌 : 행정학교-상무체육관 자리인데 호란때 청군이 진을 쳤었던 곳이라 한다.
  • 창위 : 창말 창고터 위를 칭하는 말이다.
  • 창터 : 호란때 병기를 보관했던 창고터, 또는, 군량미를 보관했던 창고터라 한다.